윤동주 언덕에서.
윤동주라는 시인에 대해서
솔직히 난 잘 알지 못했다.
중학교 시절 누나가 한창 윤동주에 빠져 있어서
젊은 시절 그의 사진을 봤던 기억과
언뜻언뜻 들리는 친일파에 대한 기사에서
그의 이름을 스쳐가듯이 봤던 것 같아서
친일 행적이 있는 시인이구나 정도의 이미지였다.
며칠 전 친한 주연상수 부부의 초대로
부암동에 방문했을 때 주연누나의 소개로 윤동주 언덕을 방문하였다.
먼저, 긴 세월 그를 친일 시인으로 오해했던 나의 무지함이
정말로 부끄럽고 부끄럽다.
그는 친일 시인이 아닌
그 누구보다 시대상황을 뜨겁게 고민하고
스스로의 나약함을 질책하며 고통받은
맑은 물의 잉어 같은 청명한 조선의 젊은이였다.
히라누마 토오쥬.
창씨개명한 그의 일본 이름이 친일이라면 친일인
유일한 그의 행위이다.
일본 유학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창씨개명.
개명한 날 그의 노트에 씌여진 고민과 번뇌가 고스란히
묻어나는 낙서를 보며 시대적 상황과 맞물린 그의 심경이
그대로 나에게 전해져 오는 듯 했다.